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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학

우리나라의 보육역사 1

by 잠만보ㅎ 2022. 8. 27.

* 우리나라의 보육 역사



 우리나라 보육사업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영유아 관련법의 변천 과정을 중심으로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아동복리법(1961년)이 제정되기 이전의 시기와 둘째, 아동복리법의 시기, 셋째, 유아교육진흥법의 시기, 넷째, 아동복지법의 시기, 다섯째, 영유아보육법의 시기이다.



1) 법 제정 이전 시기(1961년 이전)



 우리나라의 보육사업은 1921년에 태화기독교사회관에서 빈민아동을 돕기 위한 탁아 프로그램을 개설함으로써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이 프로그램들은 극빈자 자녀를 위한 구빈적인 성격을 띤 것이다. 1926년 부산 공생탁아소와 대구 탁아소의 설치를 시작으로 1939년에는 11개의 공사립 보육시설이 늘어났다. 이후 해방과 6·25전쟁이라는 정치적 대변혁 속에서 우리나라의 탁아사업은 전쟁고아나 기아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사후처리적이고 구호적인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임종운, 1994).



2) 아동복리법 시기(1961~1981년)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탁아사업이 실시된 것은 1961년 '아동복리법'이 제정 및 공포되면서부터이다. 탁아소가 법정 시설로 인정되면서 보육시설에 대한 설치근거가 마련되었으며 아동복리법에는 보육시설의 설치기준, 직원 배치기준, 보육 기간, 보호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었다. 이것은 영유아보육사업이 정부의 지도감독을 받기 시작한 것이 1961년 아동복리법이 제정되면서부터라는 것이다. 당시 아동복리법에 아동의 복지증진 보장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종래의 구빈사업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아동복지를 증진시키고 아동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시설로 그 성격이 변화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경제개발정책에 따라 보육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시설이 부족하게 되자 1968년 3월 정부는 아동복리법 시행령으로 '미인가 탁아시설 임시조치령'을 공포하게 되었다. 이 시행령으로 인해 그동안 법인 설립의 까다로운 절차와 시설비용의 과부담으로 시설 인가를 받지 못했던 독지가들은 정부의 권장에 따라 무허가 혹은 소규모 시설에서 한시적으로 인가를 받아 보육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명칭도 '탁아소'를 '어린이집'으로 변경하였는데 이는 탁아소가 단순 보호 혹은 결혼 아동을 대상으로 한 곳이라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교육이 이루어지게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취업모뿐만 아니라 전업주부도 교육을 목적으로 자녀를 어린이집으로 보내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아울러 외국 원조에 주로 의존하던 시설에 대한 정부 지원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탁아사업에 대한 예산지원에는 적극적이지 못하였다. 정부의 예산지원이 없는 가운데 취업모는 계속해서 증가하였고, 입소 대상 아동의 수도 증가하여 어린이집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와 1976년에는 600개가 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보육 시설의 질적 향상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로 1977년 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 제2항을 개정하여 보육시설의 법인 전환에 많은 편의를 제공하여 모든 시설의 법인화를 장려하면서 '미인가 탁아시설 임시조치요령'을 폐지하였다. '미인가 탁아시설 임시조치요령'의 폐지는 사유재산의 법인귀속이 수반되므로 곧바로 어린이집의 양적 성장을 둔화시켰으나, 보육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었으므로 새로운 대응책이 필요해졌다.

 정부는 경제개발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으로 보육수요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1978년 교육의 기능을 강화하고, 일반 가정 아동에게 개방하는 대신 보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탁아시설 운영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이는 보육시설에 보호의 기능 외에 교육의 기능을 강화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어린이집이 보육의 기능도 유치원과 같은 교육의 기능도 아닌 애매모호한 기능을 하도록 하여 사람들이 어린이집을 제2의 유치원으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제2의 유치원과 같은 인식이 퍼지자 취원율이 상승하게 되었다. 보육시설과 유치원의 역할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의 혼동은 보육 정책의 중요한 논쟁거리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81년 4월 13일 아동복리법이 아동복지법으로 전문 개정되면서 무료 탁아시설은 법인 이외의 사람도 신고만으로 시설을 설치 및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3) 유아교육진흥법 시기(1982~1989년)



 1980년대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유아교육이라는 부분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져 어린이집 대신에 새로운 유아교육체제를 모색하게 되었다. 결국 1982년 관계부처의 협의를 거쳐 아동복지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보육시설의 설치근거를 삭제하고 내무부가 주관 부서가 되어 1982년 3월 26일 '유아교육 진흥 5개년 계획'을 확정하였다. 이로써 1959년 이후 보건사회부에서 관장하던 어린이집, 1981년 이후 내무부에서 관장해 온 새마을 협동유아원, 농촌진흥청에서 설치 및 운영하던 농번기 탁아소, 민간인이 설립한 유아원 등 유치원을 제외한 모든 유아교육시설을 '새마을 유아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주무부서도 보건사회부에서 내무부로 흡수 및 이관되었다.

 유아교육체제를 정비하고 유아교육의 진흥을 가속화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같은 해 12월 31일에 '유아교육진흥법'을 제정 및 공포하였다. 이에 따라 새마을 유아원은 시설 확충과 운영관리는 내무부, 장학지도 및 교재와 교구 개발 및 교사 양성은 교육부, 아동 급식과 보건위생은 보건복지부에서 각각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또 유아교육기관을 유치원과 새마을 유아원으로 나누고 교육은 유치원에서, 보육은 새마을 유아원에서 중점을 두고 실시하도록 하였다.

 새롭게 출범한 새마을 유아원은 유아교육 진흥이라는 대명제하에 6년간 재정적 지원을 늘리고 비교적 소득이 낮은 층이 살고 있는 지역에 중점 설치하여 영세민 아동의 기본안전권을 보장하고 조기교육의 혜택을 주고자 하였다. 하지만 늘어나는 보육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시설이 크게 부족하였다. 또한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많은 경우 종일제가 아닌 반일제로 편성되어 있었고 교육의 내용도 기존의 유치원과 유사하였기 때문에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의 보육 부담을 덜어주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 

 보육시설 부족과 적절한 서비스의 미비로 인하여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노동부에서는 1987년 12월 4일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에 따라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시범탁아소와 직장탁아소를 설치하였고, 서울시에는 보육시설이 없는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 88 탁아소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그 수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그 수요를 충족해 주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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